신라의 아름다운 불교석상 거대불상 석굴암
신라의 불교미술품하면 석굴암 아니면 불국사가 떠오를 것입니다.
석굴암은 건축당시에는 석굴암이아니라 석불사 였으나 일제강점기이후 석굴암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김대성에 의해 건축되었는데 김대성이 석불을 조각하려고 큰 돌 하나를 다듬었는데
돌이 세갈래로 갈라져 화가 나서 잠들고 난후 천신에 밤사이 원래대로 되돌려 놓았다는 설화가
있습니다.
석굴암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본존불인데요
생동감 넘치는 부처의 모습을 정교하게 표현한 아주 예술적인 작품입니다.
특히 가늘게 뜬 눈과 옷의 주름의 표현은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을때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온화한듯한
표정이 인상적입니다.
석굴암의 과학적인 점과 예술적인 면 모두 훌륭해 세계문화유산에도 등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는데 일제에 의해 석굴이 많이 훼손됐다는 점입니다.
1912-1915년 일본제국에 의하여 대규모의 보수공사가 있었는데 석굴암은 붕괴직전의
상태라서 어쩔 수 없는 판단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보수를 하는데 콘크리트를 사용해 본래 건축된 자연적인 순환시스템이 크게
훼손되어 석굴 내부의 습도를 현재는 기계로 조절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수리한 것이지만 자세히 보면 오히려 크게 망가뜨려 놓았다고 볼 수 있죠.
해방이후에도 석굴암은 방치되어있다가 문화재관리국에 의해 보수공사를 진행했습니다.
이때 습기를 차단하기 위해 유리를 사용하고 습기제거장치를 설치했지만 여기서도 흠이 있는데 목조에 기와를
덮은것이 통풍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훌륭한 예술품이자 불상인 석굴암이 훼손됐다는 점에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그래도 지금까지 석굴암이 버텨냈다는 것이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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